바로크시대, 음악의 아버지 :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 1685.3.31~1750.7.28)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685년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바흐는 집안 대대로 수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가문이었고 "바흐"라는 이름 자체가 당연히 음악가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바흐의 집안은 루터교회 정통파 신자로 신앙적 믿음이 바흐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바흐는 최고의 오르간연주자이자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볼 수 있다. 바흐의 사후에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재평가를 받게 되고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아마도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거 아닐까? 마태수난곡, 토카타와 푸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고 대위법과 화성학의 대가이기도 하다.
바흐는 어린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나이에 독립하여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연주를 했다. 바르바라와 결혼하여 네명의 자녀를 두었고 열심히 살았으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어린 아이들의 육아와 음악작업을 병행하다가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두번째 아내는 성악가였던 안나 막달레나 바흐다. 둘 사이에는 13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고 바흐는 아내를 위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안나는 바흐의 작품을 열심히 필사하여 후대까지 악보가 남는게 큰 역할을 하였다. 브란덴부르크, 평균율 클라이버곡집 같은 작품도 두번째 결혼후 안정기에 완성하였다. 하지만 바흐는 직장의 문제로(고용주의 아내가 음악을 좋아하지 않음) 아이들을 교육하기 좋은 라이프치히로 거주지를 이전한다. 순탄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거의 일주일에 한편씩 곡을 완성하며 음악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1750년에 영국의 돌팔이 의사에게 눈수술을 받고 실명한다. 놀라운 것은 헨델도 2년 후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 실명하였다. 존 테일러라는 이 의사는 서양 음악사의 빌런같은 존재다.
바흐가 사망할 당시 바로크 음악은 낡은 음악이라는 이미지였고 고전파 음악이 주를 이루면서 소중한 악보들도 유실되고 그의 음악도 잊혀져갔으나 멘델스존에 의해 마태수난곡이 다시 발표되어 후대의 음악가들에 의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순탄하지 않은 삶,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성실한 직장인으로서의 바흐가 한편으로는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성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을때 바흐의 인벤션을 접하게 되었는데 실제 피아노 연습곡으로 활용되었다는게 느껴지는 기본적인 연주기법을 충실히 연습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지루함을 느끼고 얼른 이 곡을 끝내고 다른 곡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찾아본 바흐의 인벤션 (Sinfonia b minor, No 15, BWV801)이 훌륭한 연주자의 손에서 얼마나 균형잡히고 아름다운 곡으로 연주되는지 감탄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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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태어난 튀링겐주는 독일 중부에 위치한 주인데, 바흐를 비롯하여 요한 볼프강 폰 쾨테(각자, 철학자), 프리드리히 실러(시인, 극작가) 등 음악가와 문호가가 활발하게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들을 살펴보거나 음악가들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예술인들이 특정지역에 몰려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18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 빈에 살았더라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시공간속에서 그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을거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연주를 즐겼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이야기는 모차르트에 대해서 정리할 때 써야겠다.
바로크시대, 음악의 어머니 : 헨델
바흐가 아버지였는데, 헨델은 어머니답게 사진조차 부드러운 이미지이다. 바흐는 1685년에 태어나 1750년에 사망하였고, 헨델은 1685년에 태어나 1759년에 사망하였다. 동시대의 음악가이다. 특이하게도 바흐와 헨델 모두 독일 중부에서 태어났으며 같은해에 한달 차이로 바흐가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눈수술을 받아 둘다 실명을 하였다. 바흐의 음악은 엄격한 교회음악 같은 느낌이라면 헨델의 음악은 화려한 오페라와 기악곡이라고 볼 수 있다.
헨델의 아버지는 이발사겸 외과의사였는데 - 예전에는 이발사이면서 바이올리니스트, 이발사이면서 의사인 경우들이 많았다 - 헨델은 아버지가 63세가 되던때 낳은 자녀로, 음악가로 성장하는 걸 엄청 반대하고 판검사로 키우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헨델의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믿어 건반악기를 사주고 연습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헨델의 음악성은 유명세를 타게 되어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이후 함부르크로 이동하여 오페라 작곡을 시작하여 메디치 가문의 초청으로 피렌체에 머물다가 로마로 옮겨 종교음악을 작곡하였다. 이후 영국으로 이동하여 많은 귀족들의 투자를 얻어 왕립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마음껏 오페라 공연을 할 수 있었다. 헨델은 확실히 바흐보다 행복하게 살았고 영국인들이 헨델을 영국인이라고 주장할만큼 사랑을 받았다. 헨델이 왕실을 위한 음악도 만들었는데 조지 2세 대관식 음악이나 앤 공주 결혼식 음악 등을 남겼다. 헨델의 곡은 현대에 와서도 영국 왕식 결혼식마다 연주되고 있다고 한다.
헨델은 오페라 사업을 크게 벌였는데, 존 게이(John Gay)의 거지오페라(beggar's opera)가 들어서면서 헨델의 정통 오페라는 인기를 잃어갔고, 오페라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기로 한다. 그 후 아일랜드로 이동하여 성경전문가인 친구와 함께 오라토리오(oratorio, 성악의 일종으로 줄거리가 있는 종교적인 곡의 모음인데 오페라와 달리 연기는 없다. 독일의 수난곡(ex,마태수난곡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를 6주만에 완성해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부활의 줄거리를 담고 있고 여기에 엄청나게 유명한 곡 '할렐루야'가 포함되어있다. 할렐루야의 대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어 '왕궁의 불꽃놀이' 등 말년까지 작업을 하게 되고 점점 시력을 잃다가 바흐를 실명하게 했던 돌팔이 안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실명, 그 후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소원대로 영국 위인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의 장례식은 수많은 영국인들이 모여 고인을 애도했다고 한다. 헨델은 대우받은 음악가였구나.
[더하기] 헨델을 정리하다보니 오늘날까지도 영국 왕실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곡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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