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해 알아봅니다. 두 작곡가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지만 두 작곡가의 삶을 서로 비교하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음악 신동 모차르트, 자유 영혼을 가진 천재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고용된 악사였는데 일곱 살이 된 딸, 난네를 (Nannerl, 모차르트의 누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재능을 보여 기뻐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누나를 따라 세 살짜리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더니 네 살이 되더니 작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누나보다 더 영재성을 나타낸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도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하게 연주하였습니다. 이후,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모차르트를 데리고 다니며 연주회를 해서 큰돈을 법니다. 이 시기 모차르트는 마찬가지로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나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욕심이 많았었습니다. 일곱 살의 모차르트를 데리고 3년 반에 걸친 세계 공연을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에 즐겁게 놀고 배우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연주를 해야 했고 장티푸스 같은 병에도 걸려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시대라면 아동 학대로 손가락질받겠죠. 열두 살에 이탈리아로 1년간 또 여행을 가는 등 평생에 걸쳐 여행하며 연주활동을 합니다. 힘든 일정 속에서도 천재적인 면모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40편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7개의 오페라 등 수없이 많은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모차르트는 파리로 이동하였는데 파리에서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됩니다.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의 간섭으로 사이가 멀어지고,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음악가로 고용되지 못하고 자유롭게 지냅니다. 1782년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시하고 결혼을 하였고, 아이가 태어나고 빠르게 다양한 작품들을 완성해냈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로렌조 다 폰테"라는 오페라 대본작가를 만나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최고의 걸작 오페라를 완성합니다. 이후 폰테와 "돈 조반니(Don Giovanni)"라는 오페라 작업도 함께 합니다. 이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유산을 누나에게 남겼습니다. 아버지의 부는 모차르트의 영재성을 상업화하여 이룩한 것이고 모차르트는 남은 인생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대관식 협주곡, 마술피리 등 대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밤의 여왕 아리아로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는 크게 성공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레퀴엠을 작곡하다 미완성으로 사망합니다. 이때 나이가 35세입니다.
모차르트는 성격이 원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너그럽고 배려심깊은 "파파" 라는 별명이 붙었던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성격도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지만 음악가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제가 팬이 되어버린 하이든의 이야기입니다.
https://ststspace.tistory.com/6
음악성인(聖人) 베토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모차르트도 아주 어린나이부터 순회 연주를 다니며 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했다면, 베토벤은 모차르트 같은 신동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욕심으로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던, 그야말로 아동학대를 당하며 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사망, 가족들의 경제적 부양, 청력손실까지 베토벤이 감당해야 했던 삶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안도현 시인님의 시집 이름과 어울립니다.
베토벤은 1770년 현재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차르트보다 14살 어립니다. 모차르트가 당시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을 때라 베토벤이 음악적 재능을 보이자 베토벤의 아버지가 욕심을 낼 만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베토벤 가문은 할아버지는 인자하셨지만,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베토벤을 신동으로 키워 연주회로 막대한 돈을 벌기를 원했고 베토벤을 가둬놓고 밥을 굶기고 때리면서까지 훈련을 시켰습니다. 학교도 보내지 않고 잠도 안 재우고 연습을 하게 했죠. 하지만 베토벤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어린이였는지 그 혹독한 연습과 아버지의 폭력을 이겨내고 음악가로 성장합니다. 여덟 살에는 여섯 살 천재라고 속여 연주회도 하게 되죠. 그러다 열한 살에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 네페를 만나 지도를 받게 되고 열네 살에는 보조 연주자로 월급도 받게 됩니다. 17살이 되던 해에는 31살이던 모차르트는 만났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으로 다시 본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이었고 동생들까지 있어 경제적인 부양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하여 하이든, 살리에르 등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베토벤은 하이든의 지도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인자함이 혹독한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베토벤에게 임팩트가 없게 느껴졌을까요?). 거침없는 성격이었지만 음악적 명성으로 주변의 배려를 받으며 빈에서 유명인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초반에는 하이든의 지도를 좋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전주의 음악을 많이 작곡합니다. 이후는 고전주의를 벗어난 교향곡들과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라고도 불리는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만들어 냅니다.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는 뭘까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운명, 전원, 합창 등 명작들이고, 피아노 소나타 또한 우리에게도 유명한 비창, 월광, 열정, 템페스트, 고별 등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연결다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20대 중반부터 청각장애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귀에서 소리가 울리는 이명이 시작되며 괴로워하다가 1818년 (48세)부터는 청력이 완전히 손실됩니다. 청력이 손실되고서도 작곡을 이어갔다니 천재가 맞습니다. 특히 9번 합창교향곡의 초연 때 관중의 환호를 듣지 못하고 있다가 알토 가수가 베토벤을 돌려세우자 그때 알아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베토벤은 빈에 정착하여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불행을 이겨낸 작곡가로 성공하며 살아가다가 57세에 사망하고 많은 시민들의 애도를 받습니다.
'클래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탁월한 기교를 가진 천재 - 파가니니, 리스트 (0) | 2022.11.20 |
---|---|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음악가,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0) | 2022.11.19 |
해리왕자와 메건마클 결혼식 음악 (0) | 2022.11.16 |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0) | 2022.11.15 |
(클래식거장) 음악가들의 태어난 해와 수명 (0) | 2022.11.12 |